지금이야 당연한 것처럼 매일매일 출근해서
'집가고싶다.' 라는 생각만 하는 나지만,
그럼에도 오늘날의 일상이 당연한 것은 아니였다.
어쩌면 과거의 나에겐 정말 원하는 삶이였고
그러하기에 나는 여러 불만이 있음에도 꾸역꾸역 다니는 것이다.
2년 전이였다.
시험이 대략... 2주일 정도 남았을 때,
그때부터 정말 몰아치듯 공부를 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그때의 집중력 최대는 아니였고
평소보다 더 열심히 했을 뿐이였는데 정말 힘들고 지쳤던 기억이 난다.
딱히 기억은 안나는데,
블로그를 보니 1주일 전부터 게시글이 거의 없다.
지쳐서 그랬을 것이다.
그러다가 대략 하루이틀쯤 남았을땐,
모든 과목들 전범위를 한 번 쭉 훑기로 하고 했다.
그러다가 시험 전날에
국어, 영어, 한국사 모의고사를 봤는데,
점수가 정말 거지 같이 나왔던 기억이 난다.
그저 실전 모의고사에 불과한데 마음이 흔들렸다.
불안하고 손이 떨렸고 공부를 당장이라도 관두고 싶었다.
어찌저찌 겨우 마음을 잡긴 했다만,
이 과정에서 1시간 정도 소요했던 것 같다.
숨이 거칠어졌고 땀이 많이 흘렸다.
저때 스스로에게 정한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결국 체력적으로, 심적으로 무너져버려 저녁 일찍 집에 들어갔다.
2021년 국가직 시험을 난 아직도 기억한다.
4월치고 추웠던 날씨였다.
두터운 후드티에 평소 자주 입었던 패딩 조끼를 입고 갔다.
아버지께서 시험장까지 데려다 주셨는데,
당해 첫 시험이라 그런지 긴장이 되고 불안도 되고 힘들었다.
이번에는 붙어야 하고 물러설 곳이 없기 때문이였다.
물론 정말 원하는 것은 국가직이 아닌,
지방직 시험이었지만 첫 시작부터 불길하게 시작하면
다음 시험도 좋은 결과는 없을 것 같았다.
그날 아침의 꿈은 정말 재수가 없었다.
꿈에서 시험지를 받고 영어 지문을 읽는데,
읽히지 않는 꿈이었다.
영 찜찜했다.
첫 시험은 아니였다.
지난 해에 국가직, 지방직 시험을 응시한 적도 있었고
노량진에 몇 번 찾아가서 실전처럼 모의고사를 응시한 적이 있었다.
다만, 몇 번의 시험이여도 시험날의 긴장감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았다.
요약서를 여러 권 들고가 헷갈리는 것들을 몇 번이고 보고
다시 한 번 봐도 불안하기만 할 뿐, 나아지는 건 없었다.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그런 것 같았다.
얼어붙은 시험장의 공기는 그 자리에 없는 사람은 상상하기 어렵다.
시험지를 받고서의 기억도 잊을 수가 없다.
눈앞에 있는 이 시험지가 지난 1년을 평가하는 지표이고
또 이 시험 한 번에 모든 것이 결정되니까 말이다.
국가직 시험지를 펼쳐볼 때의 감정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국어가 어려웠다.
자신있는 과목이 국어였는데 1번부터 어려웠다.
그래서 1번을 넘기고 2번을 갔는데 2번도 어려웠다.
3번도 마찬가지였다.
심장박동이 커지기 시작했고
마음을 다스리기 힘들었다.
한국사도 만만치 않았고 다른 과목들도 마찬가지였다.
시험이 끝나고 빨리 가답안이 나온 과목들은 집에 가는 길에 채점을 했다,
내 기억으론 한국사는 전철을 기다리면서 채점했고
영어는 전철에 내려서 채점했다.
생각보다 한국사, 영어를 잘봤고 국어는 다 어려웠던 모양이라
이거 어쩌면 올해는 되겠다 싶었다.
확실히 말하자면 100%는 아니고 붙을 확률이 대략 60~70% 정돈 될 것 같았다.
붙을 것 같은데 확신은 할 수 없는 상황이라 온갖 상황을 가정하고서
붙지 않을까? 하고 합리화를 했던 기억만 난다.
사실 국가직보다 지방직이 더 붙기 어려워 보였다.
경쟁률이 1:24 였으니,
차라리 국세 붙는 게 더 가능성 있겠단 생각으로
평소의 그 무지막지한 몰아붙이기식 공부가 아니라 한 풀 꺾인 자세로 공부를 했다.
기억이 나는게, 그때 요양원에 계신 할머니도 병문안도 갔고
(그 이전까진 공무원 시험 붙는 게 도리라 생각해서 쌩깠음...)
평일에 친구들 만나서 술도 마시고 그랬었다.
물론 요양원 가기전, 친구 만나기 전에는
빡 집중하고서 가긴 했다만 국가직 시험 전까지는 상상도 힘든 일이였다.
고작 하루인데도 뭔가 그 루틴이 박살나면
나의 공시생 생활이 무너질 것 같은 기분이랄까.
넘어가서는 안되는 그런 일종의 선과도 같았다.
물론 공부를 평소보다 적게 했을뿐, 공부는 꾸준하게 했다.
내가 국가직 시험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스터디카페에 갔는데,
정말로 공부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다시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한다고 다짐했건만,
하는 것이라곤 국가직 시험에 대한 정보만 찾아볼 뿐이였다.
그때 공부도 어차피 안되니 친구에게 전화해서 주저리주저리 말하니까,
친구가 했던 말에 정신을 차렸던 기억이 난다.
"근데 지수, 결국 너가 가고 싶은 것은 지방직 아니였어?"
그럼과 동시에 조금은 쉬어가면서 공부하라고 그런 말을 했던 것 같다.
근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맞았던 것 같다.
꾸준하되 조금은 느슨한... 지칠대로 지쳤으니까 말이다.
시간이 지나 늦봄이 끝나고서 6월의 어느 살짝 서늘한 날.
지방직 시험을 보러 갔다.
정말 원했던 지방 세무직이였기에 간절하면서도
'국세'라는 선택지가 있어서 살짝 안정적인 느낌이라
국가직 시험처럼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라는 그런 공포감은 없었다.
그때도 국가직 시험때처럼 평상시보다 추워서
6월임에도 불구하고 반팔에 긴 후드집업을 걸치고 시험장에 갔다.
국가직 시험때는 '아 이거 큰일났다. 복학해야하나?' 라고 생각했는데,
국가직 시험때는 진짜 별 생각이 없었다. 어떤 문제였는지도 기억 안나고.
그냥 시간이 부족해서 사회 문제 몇 개 못풀어서 대충 감으로 찍었던 것들이
맞아서 점수가 높게 나왔다는 거?
그땐 운이 좋아서 찍고 맞혔구나 싶었는데
지금 와서 돌아보니 어쩌면 찍었다고 생각했지만 그냥 내 감각이였다고 본다.
그러지 않고서야 4문제를 찍었는데 다 맞았겠는가?
긴가민가해서 몰랐고 그저 감에 의지해서 찍었는데,
오랜 공부 끝에 만들어진 나의 본능이였겠지.
국가직 시험과 달리 지방직 시험 끝난 직후엔 감흥이 달랐다.
시험 끝나고서 집가는 버스를 타는데,
붙고 안붙고를 떠나 이제 끝났다는 생각.
아침엔 공기가 차가웠는데 이상하게 시험이 끝나니
어느 초여름의 계절마냥 더워지기 시작했다.
끝난 직후 집에 들어가 점심을 먹고서
거실바닥에 드러누워 천장만 쳐다봤다.
합불을 떠나 그런 생각만 계속 맴돌았다.
'끝이다. 진짜 끝이다.'
흑심으로 얼룩지고 동그라미와 작대기가 조금 보이는
시험지하고 같이 누운채 말이다.
내 청춘의 끝은 이렇게 끝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