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친구 결혼식이 있었다.
뒷풀이에 가자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어떤 연락이 왔다.
나하고 친구는 주저없이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항암치료를 받고 있는 친구의 가족분에게서 온 연락이였다.
상태가 좋지 않기에 오늘이 아니면 만나기 힘들 것 같단 소식이었다.
택시를 잡고 친구와 함께 국립암센터로 향했는데
차 안에선 침묵만 흘렀고 내 심장은 멈추지 않고 쿵쿵 뛰었다.
작년 4월 6일이였다.
나는 승진을 했고 친구는 취업을 했다.
그리고 다른 친구들까지 함께 모여서 양꼬치를 먹었다.
나는 나름대로 사회생활을 한 선배랍시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7월쯤 친구가 휴직했단 소식을 들었다.
이유는 허리에 극심한 통증을 느껴서 일을 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주위에 허리가 맛이 간 친구들이 있었기에
야 임마 너도 조심해 같은 이야기를 했었다.
그때까진 몰랐다.
나중에야 알았다.
'투명세포육종' 이란 병에 걸린 거였고
8월 1일쯤에 의심 진단을 받았는데 9월쯤 확정되었다고 한다.
본인도 웃으면서 그런 말을 했다.
디스크 그런 건 줄 알았다고.
10월쯤이였다.
친구의 몸상태가 호전되어서 병원에 나오게 되었다.
숙직 근무를 마치고서 친구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다른 친구랑 함께 갔는데 확연히 달라진 친구의 모습에 놀랐다.
머리카락 없이 빡빡 민 머리에 핼쑥해진 그의 모습.
하지만 그럼에도 의연한 태도를 유지하던 그였기에
걱정하는 것이 드러나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심란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오랜만에 벗을 봐서 즐거워 하는 모습이였는데
나는 정작 그러질 못했다.
심란했다.
연락이 꽤 되질 않았다.
그러나 카톡에서 올라오는 소식만 듣다보면 호전되는 것 같고
친구들하고 게임 이야기를 하는 걸 보면 나아지는구나 싶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언젠가 멀쩡히 돌아올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가 오늘 연락을 받은 것이였다.
가족분을 뵙고서 병실에 들어갔다.
친구는 확실히 많이 힘들어보였다.
고통이 극심하기에 착란을 일으키는 마약성 진통제로 버티고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대화는 할 수 있었다.
일이 있어 못 온 친구들을 위해 영상통화를 켰고
그렇게 여럿이서 친구의 병문안을 함께 했다.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자신의 상태가 악화되었기에 슬슬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러니까 자신은 명을 달리할 시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친구는 다른 날들처럼 덤덤하게 말했다.
오히려 그랬기에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다.
언제나 냉소적이고 비관적이였던 너였고 그런 태도가 싫었는데
그런 언행은 자기 자신에게도 가리지 않았고 임종 직전에도 그럴 수 있구나.
그러하기에 더 짜증나면서도 더 슬프게 느껴졌다.
죽음 앞에서도 두려울 법한데 무섭다는 말은 없었고
예전처럼 의연하게 그 최후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짧은 면회 시간이 끝났고
우리는 밖에 나와서 찾아온 다른 친구를 기다렸다.
친구 부모님께 들어보니 그런 말씀을 하셨다.
오늘은 컨디션이 좋아서 불렀다고.
평상시엔 깨어있는 시간이 얼마 되지 않고 잔다고 했다.
지금 상태로는 2주일도 버티기 힘들며
그래서 이후 있는 일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고 한다.
(이때 한 번 더 심장이 가라앉는 기분이였다.)
그런데 이렇게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니 진심으로 좋아했고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살고 싶다고 그렇게 말했다고 했다.
그 말을 하면서 친구의 동생분께선 울음을 참지 못하셨다.
나 같아도 그랬을 것 같다.
시간이 지나 다시 인천으로 돌아갔다.
쿵쿵 거렸던 심장이 가라앉고서 집에 들어갔는데
가슴 속 감정이 갑자기 풀려서 그런가.
거실에서 서럽게 펑펑 울었다.
그게 내 친구의 마지막 모습이라고 생각하니까.
다시는 못 볼 것이라 생각하니까.
28살이란 나이,
누구는 이제 또 다른 인생의 시작점을 찍었고
누구는 저물어가는 황혼을 보고 있다.
그 생각을 하니 기분이 복잡하고 미묘했다.
내 친구가 그랬다.
인생이란 원래 그랬다고.
원래부터 불공평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