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소득세 신고기간이 끝나고
실습근로자에게 계좌번호를 물어봤던 기억이 났다.
급여를 지급하기 위해서였다.
근데 그때 이후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연락을 계속 했고
아마 어느 순간부터 썸을 타기 시작했던 거 같다.
참 신기한게 썸을 탔던 적이 없어도 그게 본능적으로 썸이란 걸 알겠더라.
어느 순간부터 뭔가 고백해도 받아줄 거 같단 생각이 들기 시작했음.
실제로 여자친구도 그때를 생각하며 이렇게 말하더라.
"내가 좋아하는 티를 얼마나 냈는데 언제 고백하나 했다!!!"
고백하고서 손을 같이 잡고 헤어지는데 기분이 좋더라.
근데 상대랑 달리 사랑과 이성적 호감, 그 중간의 애매한 상태였음.
게다가 상대가 나를 좋아한다는, 그게 참 좋은데 한편으론 부담스러웠음.
연애를 한 번도 안해봐서,
그런 여자가 있으면 놓치지 말아야한다는 어른들의 조언들 들었기에
나름대로 환상을 품고 있었고 기대도 했는데
실제로 만나니까 엄청 좋다가도 두려웠음.
'날 이렇게 좋아해주는데, 내가 실망시키면 어떡하지?'
그게 되게 두려웠던 거 같음.
비유를 하자면 대화를 하거나 데이트를 할 때마다 바둑을 두는 기분이였음.
언제나 최선의 수를 둬야한다.
말을 신중히 해야한다.
여자친구는 내 화려한 혀놀림에 호감을 가졌는데
정작 말을 안하게 되더라.
게다가 여자친구도 말수가 많은 편은 아니고 조용함.
게임 중에 '월희' 라고 있는데 거기 나오는 '히스이' 라는 캐릭터랑 비슷함.
이전부터 히스이 같은 여자친구 사귀고 싶다고 노래 불렀는데
보다보니 그런 느낌 나는 거 같기도 하고... 아무튼.
그래서 연애 초에는 말수가 적고 조용해서 정말 힘들었음.
뭔가 대화는 내가 리드해야 될 거 같은데 할 말은 없고
그 상황에서 어떻게든 넘어가지 않으면 침묵만 뚝뚝 흐르는...
그랬다가 점점 친해지니까 감정표현도 확실하게 하고
말수가 적은거지.
리액션도 재밌고 장난도 잘 치는 성격이라 만날 때마다 너무 재밌더라.
(주접 떨고서 질색하는 반응 보면 아주 신남 ㅋㅋㅋㅋ)
이렇게 적고서 보니까 진짜 히스이 같네.
사실 월희에 나오는 히스이도 말수가 적은거지.
실제론 다정다감하고 자기 주관은 뚜렷하고 그러잖아. 딱 그런 느낌.
데이트 할 때마다 생각하는데
요즘 땡글땡글해진 게 볼 때마다 귀여워 죽겠음.
진짜 매번 여자친구 얼굴 쳐다보면서
'ㅋㅋㅋ 진짜 어떻게 이런 여자를 만났을까. 나는' 같은 생각함.
이거 주접인 거 아는데,
뭐 이런 거 적으라고 있는 개인 홈페이지잖아.
감안해주셈.
사실 그래서 지금이 제일 행복함.
오히려 고백한 직후보다는 지금이 더 행복함.
뭔가 그때는 혼자인 삶이 익숙해서 불편했는데
지금은 이런 삶이 익숙해지니까 즐겁고 신남.
그래서 회사 사람들이 로비에서 전화하는 나를 보면서
진짜 일하면서 본 적 없는 표정이라고 그러는 걸까.